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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People/가슴으로 사는 사람들

노인(老人)이 소인(少人)으로 살아가려면.... 그 벽을 어떻게?

by Metapoem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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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도 내가 노인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떠오르는 생각에 내심 동의한 적도, 한번도 없다. 그런데 주변의 어린 아이들이 '노인'이라는 워딩은 쓰지 않고 말했는데,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 그래서 어린 조카들에게는 내게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고 농담 아닌 충고?를 하곤 한다. 그런다고 내 세포가 시간 역행 반응을 미토콘드리아 체수 길이 정도라도 보일까? 천만이다. 어제의 주름진 세포 지질대는 오늘도 여상하다. 

 

이 정도 의식의 흐름이 진행되면, 나름 스스로 타협하게 된다. 

"젊게 살아가자."는 대안 마련 정도가 되겠다. 

 

어떻게? 

또다른 벽에 부딪힌다. 

 

초록색 츄리님을 입은 남자
남자

이 벽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 비물리적인 무형의 벽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벽돌로 하나씩 단단하게 쌓여진 벽이 내 앞에 있다고 무의식으로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벽을 허물어버리는 내적 갈등과 싸움이 좀 더 나은 여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되겠다.

 

그러면 그래도 어떻게?

벽의 두께가 약간 얇아졌다. 

 

"그러면 내 의지와 노력으로 뚫어볼 수는 있겠다..."라는 생각도 스멀스멀 새롭게 머리를 내민다.

 

비철학적인 워딩으로 말하면 이렇다.

"내가 젊게 사는 거다."

철학적으로 워딩하면 이렇다.

"노인이 소인이 되는 거다."

 

노인(老人)이 소인(少人)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는 혈관이나 세포, 근육의 튼실한 정도로 노인과 소인을 구별하려고는 하지 않겠지?

그렇다.

 

그렇다면 남은 숙제는 분명해진다.

 

 소인(少人) 즉 젊은이들이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도 좀 무지막지하다.

근력이 딸리는데 어떻게 힘차게 일과를 보내며 일하거나 활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내 스스로의 벽을 허무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그 벽을 뚫고 있거나, 머리를 비집고 들이밀었다면 이제 벽 너머의 세계가 분명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 

 

그게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사회적 연륜적 설정을 허무는 일이다. 

즉, 나는 신분이, 직업이, 해 온 일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누가 보면 뭐라고 핀잔할까... 하는 등의 사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버리는 일이다. 소위 '알 깨고 나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도 그 벽을 넘어가고 있다. 한 다리는 이미 건너갔다.

 

어떻게 할건데?

 

지금까지 나를 가로막았던 '직책의 바운더리'를 허물 생각이다.

그래서 우선,

- 옷도 머리도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게 스타일링한다

- V50 PRO 액션캠을 들고 거리로 나가 브이로그를 찍는다

- 고성능 녹음기를 사서 ASMR도 한다

- 유튜브의 영역도 확 넓힌다.

- 문 워크도 배운다.

- 사람 만나는 환경에 더 노력한다.

 

소인들에게는 아주 우스운 일이지만, 내게는 벽을 건너가는, 다른 영역으로 trespassing하는 모험이다.

 

내가 살아온 삶은 제한되는 한계가 너무 많았다. 

그 누구도 그렇지 않겠냐 만은...

 

나는 사회적 자리가 '목사'이다. 

그 무엇도 조심스럽고, 경계해야 하는 자리이다. 한국 교회 지평에서 제대로 해 놓은 일도 없는 무명이면서도 말이다.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도 검열이 철저하다. 

 

이제는 성경에서 가리키는 죄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지 해 볼 생각이다. 못한다면 내 능력과 여건이 부족해서이지 안해서가 아닐 것이다. '죄로 성립되는' 영역이 아니면, 자유함 안에서, 감사하면서, 또 기뻐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사람들 눈치? 이제 그만 살피고, 의식하거나, 주눅들거나 하지 말자.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어울려, 나누고, 이끌고, 따라가고 살아가는가 하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을까.

 

노인(老人)이 소인(少人)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단백 영양제 만이 대안이 아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노인들도 죄다 고단위 영양제를 매일 먹다가 떠나갔다. 노인이 소인으로 체질이 변하는 일은 유토피아 소설에서도 구현이 불가했다. 남은 과제는, 현재에서 내가 해 보지 못한, 건전하고 말짱한 문화적 모든 것들을 해 보는 일이다. 

 

확 젊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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