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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Sound/세상 요란한 소리

당신은 조선(朝鮮)의 장홍임을 아는가! 그가 왜 이 사회보다 더 정의롭고 깨끗해 보일까!

by Metapoem 2022.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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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수선하다. 이 어수선함은 잔치집 마당 주변에서 일어나는 흥겹고 긍정적인 그런 분주함이 풍기는 기색과 거리가 먼 어수선함이다. 즐거운 자리 한 중간에 갑자기 큰 바위 덩어리 하나가 '쿵!' 하고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하고 불편한 기색이 완연한 그런 분위기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 잔치는 사실 잔치가 아닌 셈이다. 잔치는 모름지기 흥겨운 노래가 있고 함께 나눌 음식이 편만해야 하는 법이 아닌가.

이번 주간은 특별히 한국 교회가 구별되게 지키고 있는 '고난 주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증적 범죄나 증거 하나 없었음에도, 헌법적 권력을 쥐고 있던 흉악한 산헤드린(대제사장들+바리새인들 외 구성원)은 그를 혐의자로 몰아부쳤다. 급조한 거짓 증인들을 조작해서 치밀하게 내세웠지만 증인들간에 서로 모순된 주장들을 함으로써 조작이 드러났다. 우리네 사회와 왜 이리도 닮았을까. 예수가 동서남북 결백했음에도 불구하고 흉악한 저들은 신성모독이라는 가장 큰 죄목을 걸었다. 이어서 하룻밤 사이에 후다닥 불법적으로 형식 재판을 거쳐 빌라도를 겁박하면서 사형 선고를 이끌어낸 저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당시 극악한 두 강도들 속에 동종 계열 범죄자로 넣어 뒤섞어버렸다. 그리고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사형을 집행해 버렸다. 이렇게 억울하게 죽임 당했지만, 예수는 많은 사람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셨다. 그것은 그가 다시 살아나 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결국 승리자인 셈이다. You Win! 엄지척은 그에게 어울리는 모토이다. 그러기에 고난 주간은 너무나 감사한 주간이다. 이 끄트머리에 부활의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고난의 십자가 - 시사한겨례 기사에서


예수께서 당했던 억울한 사형 언도는 어쩌면 2000년이나 지난 대한민국에서도 반복되고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거의 똑같다. '사람 살 만한 건강하고 합리적인 민주적 가치의 오늘과 내일'이 '억울하게 죽임 당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억울한 자리에 선 것을 보라! 그렇다면 예수가 빌라도 앞에서 무죄로 선고될 가능성이 거의 희박했듯이, 지금도 그리할 듯 하겠지.

당신은 조선시대 인물들 중에 장홍임이라는 자를 아는가. 아주 여성적인 이름이지만 매서운 자다. 이 어수선한 때에 장홍임이 다시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개인적인 바람이다. 그는 춥고 배고파 하는 서민들의 입장을 잘 이해했다. 그는 관리들이 노략했던 불법적인 가산과 부는 백성들에게서 빼앗은 것들로 확신하고 도로 되찾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관원들은 실증법 논리를 들어가며 그가 횡령과 배임의 죄를 저질렀다고 악다구니로 맞섰지만 장홍임은 굽히지 않았다. 목숨도 구걸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고스란히 남아서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좋다. 장홍임이 실증법을 어긴 범죄자였다고 말하고 싶다면, 대한민국 이 시대에 다시 나타나길 바라는 제2의 장홍임은 상대적으로 반듯하면 되겠다. 선택적 조문들로 가득찬 선고문은 결국은 진실이 아니기에, 시민들이 옳다고 여기는 그 진실이 '반듯함의 기준'이 될 것이다. 지난 날,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실증법을 위반했다는 억측 같은 악다구니로 인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옥고를 치르며 전과자들이 되었던가. 대한민국은 유죄 선고를 받은 적 없는 깨끗한 인적사항의 관료들이 이마에 붉은색 전과 도장이 찍힌 이들보다 더 치밀하게 사악한 짓을 하면서도 떵떵거리며 잘만 살아가는 이상한 나라로 남아 있다. 앞으로 역전되어야 한다. 꼭 역전되리라!

이익(李瀷)은 장홍임을 도적이라고 말했지만, 당시 조선의 현행법으로는 죄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는 정황증거들은 있었다고 한들, 반복적인 미필적 고의로 인한 악정과 부패, 비리로 온 나라를 어지럽게 했던 양반사대부와 관료들의 추악한 죄악에 비하면 그의 간헐적 회수(박탈해서 빼앗긴 자들에게 나누어 돌려줌)가 어찌 무거운 죄악일까. 횡단보도 침범 정도의 범칙금 발부 대상자에 불과한 정도가 아닌가.

지금은 고난 주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이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골고다(해골이란 뜻) 언덕에서 온몸의 마지막 핏방울까지 몸에서 빠져나가기까지 고통당한 수 죽으셨다. 그리고 사흘 후에 무덤에서 살아나셨다. 일반인들은 당연히 이 기록을 믿지 않겠지만, 증인들이 많은 기록을 남겼기에 믿을 만한 사실인 것이고, 신자들은 그 믿음의 확증을 지금도 개인적으로 확신받고 있기에, 그 사건이 지난지 2000년이 되었어도 매주일마다 예배당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기 며칠전 수많은 무덤 안에서는 이미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예수께서 부활했던 날에 적지 않은 신자들이 살아나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때 적잖은 무덤들이 비어버리는 사회적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많이 비어버린 무덤이 대한민국에 많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땅에서 선택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추악하고. 뇌물받고 유죄를 무죄로 만들어 주고 거액의 뒷돈 챙기기 좋아하고, 법을 어기면서 음란한 동거를 하고, 도무지 상식 수준도 안되면서 나라 사랑한다고 설쳐대는 자들을 그 무덤 속에 하나씩 처넣고 싶다. 여기에, 여의도에서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매달 같은 날에 거액의 나랏돈을 매달 꼬박꼬박 받아처먹는 비리 덩어리의 거짓된 기독 정치인들까지 죄다 그 각각의 무덤 속으로 처넣어버리고 싶다. 그러면 그 금수같은 존재들도 내년, 후년 아니면 10년 후에라도, 어느 부활절 아침, 제대로 된 사람이 되어서 그 무덤에서 반듯하게 걸어 나오게 될 줄 누가 알랴. 기적같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사람에게는 희망이라도 있으니까...

지금은 고난주간이다. 고난 당하는 자가 패배한 자라고 여겨지는 주간이다. 그런데 저 흉악한 놈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3일 후에 그 패배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늘 역전된다. 또 역전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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