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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ature/겨울은 결코 짧지 않지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홀로코스트도 겪은 老여인의 외침, "빌어먹을 푸틴!"- 대한민국인들이여,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자!

by Metapoem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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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25일 되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동족상잔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떠올림의 그 강도는 현재 생존하시는 1930년대 연령층이 가장 강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1940년대생이 클 것이다. 이런 강도는 50년대, 60년대, 70년대 순으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약화될 것이다. 1950년대생 즉, 현재 60~70대 연령층은 전쟁 포연의 기억은 사실상 뇌리에 없다. 그러나 기저귀를 떼면서부터 전쟁의 상흔이 도시와 시골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몰골들을 보고 자랐기에 반전에 대한 의식 또한 강할 수밖에 없다. 모든 연령대의 한국인들이 지니는 공통적인 사실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경각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경각심은 과도한 반공 사상으로 강화되기 쉬운 탓에 그릇된 정치인들이 그 의식을 이용해 고연령층의 표를 강탈해가는 한국 특유의 정치 풍토도 현존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경제 성장 세대들이라고 해도, 전쟁이 일어나면 개인의 여가, 여행, 취미 활동, 현란한 영상의 게임들, 그리고 젊은 육체가 주는 만족 등 모든 일상들이 제약당할 뿐 아니라 사라져버린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해 정도는 하기에 전쟁 재발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국 전쟁의 참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국 전쟁의 원흉을 들라면 주저하지 않고 김일성을 말한다. 요즘 세대는 김정은이라고 불쑥 대답할 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유럽인들에게 과거 전쟁과 독재의 원흉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이라고. 혹 김일성은 언급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지한파일 것이다.

소련의 무기와 전술 지원을 등에 업은 김일성은 1950년 6월, 해방 이후 여전히 소란스럽던 대한민국에 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후 3년간 이 땅은 초연이 휩쓰는 땅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과 국내외 군인들이 죽어갔다. 휴전 이후 김일성은 살상과 공포로 북녁을 독재로 짓눌렀다. 그래서 김일성은 독재자인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갑작스런 침공에 크게 파괴되었고, 국가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 여러 독재자들을 몸소 보고 듣고 겪은 분이 생존해 있어서 화제이다.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아나스타샤 굴레즈(96세) 이름의 노여인이다.

아나스타샤 굴레즈

1926년생인 그녀에게 히틀러, 스탈린 등 독재자는 지근의 폭행자들이었다. 민족주의적 정신과 아리아인의 가치를 정치적으로 세뇌시킨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을 통해 독일인들의 정신을 빼앗아버렸다. 아나스타샤는 젊음이 막 시작되는 20대를 맞이하기 직전에 나치 정권의 무력 하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는 히틀러에게 테러를 당한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혹은 벨젠 수용소)에 구속의 몸이 되었다. 유대인들을 수용한 이 곳에 아나스타샤 역시 수용되었다. 당시 벨젠수용소는 요세프 크라머라는 악명 높은 소장이 관리했다고 한다. 여자 수용자들은 21세의 젊은 나치 여간수 이르마 그레제에게서 치독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여기에 굶주림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수용자들이 죽어나갔다. 그녀가 여기서 알게 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는 영양실조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당시 수용된 41,000명 중에서 약 90%인 37,000명이 아사와 질병으로 죽었다. 아나스타샤는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기에는 수용 기간이 너무 짧았다. 넉달이 지났을 때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게 패망했고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945년 그녀가 조국 우크라이나로 돌아왔지만 소련의 속지인 우크라이나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에서 여전히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곡창지대였기에 강대국들이 수탈하기에 적격이었을 것이다. 스탈린은 1922년부터 53년까지 집권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도무지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스탈린은 1929년 농촌 개발 혁명을 내걸고 강제로 농민들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콜호스프(집단농장)과 라도호스프(국영농장)에 농민들을 강제해서 일을 시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다음해에 기근이 몰아닥쳤다. 아나스타샤의 나이 네 살이었을 때에 동포 350만 명이 먹지 못해 죽어나갔던 아픔의 역사가 지나갔었다. 당시 인구의 12%가 넘는 숫자가 사라졌다. 곡물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곡물로 수출 뿐 아니라 소련 군량미로 수탈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죽은 말 사체를 놓고 싸우기도 했고, 개, 쥐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야 했다. 심지어 사람의 시체를 먹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과거가 있었던 우크라이나였기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상황은 여전했다. 스탈린 한 인간으로 인해 이러한 참상이 일어났다. 이 역사의 교훈을 대한민국 국민은 반드시 새겨야 한다. 한 사람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고귀한 인생의 황금기를 히틀러와 스탈린에게 빼앗기고 인생의 질곡을 겪었던 아나스타샤 굴레즈는 인생 마지막 시기에서 또다시 시련기를 맞이했다. 이 무슨 불행의 연속인가. 그녀는 블라디미르 푸틴에게서 또다른 스탈린을 보고 말았다. 90대 나이에 겪은 전쟁. 이번에는 그녀는 독일로 피해야 했다.
그녀는 푸틴을 향해 울분을 쏟아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인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벌이고 있다. 나는 히틀러에서도, 스탈린에서도 살아남았다. 이 빌어먹을 푸틴에게서도 살아남을 것이야!"
CIS 국가들 중에서 가장 크고 비옥한 영토를 지닌 나라가 우크라이나이다. 가스 생산량과 소비량이 엄청난 나라이기에 러시아 푸틴의 만행을 부추겼는지도 모르지만 이는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

이번 두 나라의 전쟁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을 실로 엄청난다. KGB로 전세계인을 두렵게 했던 소련의 감시체제, 하지만 레이건-고르바초프를 통한 개방 이후 드러난 허실은 엄청나다. KGB는 도무지 허술한 조직체였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허상을 세계인이 지난 수십년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또다시 드러났다. 러시아의 국방력이 허상이었음이 드러났다. 푸틴은 러시아의 자산의 엄청난 부분에 대해 돈의 흐름들을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그 많은 국방비를 어떻게 사용했기에 이런 몰골이 드러날 수 있단 말인가! 러시아의 무기나 군인들의 정신이 얼마나 허약한지 그대로 드러났다. 겉으로 드러난 국방력과 실재 국방력은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엄청 강해졌다. 이런 성장세가 위축되게 하는 그 어떤 움직임이 있어도 즉각 막아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험난한 시기를 이겨낸 민족이다. 이번에 그 저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번을 계기로 더욱 강해지는 내실, 외실의 나라가 될 여지가 많다.

*****


우리 모두는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기에 또하나, 푸틴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국가 자산이나 국가 체제까지 손아귀의 구슬처럼 주물러 왔다. 대통령-총리-대통령 집권이라는 독재식 횡포를 일삼았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위상은 이런 시행과 어긋나지 않는다. 러시아 국민은 이제 우민성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런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악한 독재자 조상들을 줄줄이 둔 러시아 국민들이 겪어야 하는 운명같은 무거운 중력이다. 가위에 짓눌려 있다. 이게 보이는가!

우리는 아나스타샤 굴레즈라는 한 노인을 통해 역사의 고귀한 가치와 진실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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