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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ature/봄은 시작이면서 겨울 정리

어린이날. 모든 사람들의 공감대는 어린이 시절이다. 어린이는 옳고 그름, 불법과 정의의 기준이다!

by Metapoem 2022.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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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 👩🏻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어른들도 어린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몸은 아니되어도, 배움과 달라짐은 어린이가 될 수 있다. 어린이날이 주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하겠다.

1. 어린이날의 역사적 의미
2. 어린이날의 경험적 의미
3. 어린이날의 교훈적 의미

1. 어린이날의 역사적 의미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어린이날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919년의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1923년 방정환(方定煥)을 포함한 일본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가 1927년 날짜를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5월 5일로 정하여 행사를 하여왔으며, 1961년에 제정, 공포된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하였고, 1973년에는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가 1975년부터는 공휴일로 제정하였다. 이 날은 어린이가 따뜻한 사랑 속에서 바르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며, 불우한 어린이들이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 위로하고, 모범어린이 및 아동복지사업의 숨은 유공자를 발굴, 표창하는 한편,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사를 실시하여 체력향상 및 정서함양을 도모한다.>

역사적인 흐름과 어린이에 대한 지원과 격려 등이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린이들은 객체로, 어른들은 주체가 되어 기술하고 있음에 어느 정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마치 어른들은 어린이 시절을 지나지 않은, 아주 새롭게 변태한 새로운 피조물이나 되듯, 근엄하게 기술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과연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보살핌과 격려, 지도만을 받고 자라야 하는, 덜 성숙하고 덜 된 인간일까. 오늘 어린이날을 보내면서 새삼 이런 생각에 들어 적는다.


2. 어린이날의 경험적 의미
오늘 인터넷 기사에 오른 중심 기사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레거시 미디어, 중앙일보의 기사를 보자.

기사 제목 : 헬기로 모셔왔다…靑서 어린이날 보낸 '마지막 어린이' 정체
<문 대통령이 어린이날을 맞아 청와대로 어린이들을 직접 초청해 대면한 것은 3년만이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가상공간과 온라인을 통해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했다. (중략)

문재인 대통령과 어린이들
(중략)어린이날, 어린이들과 함께한 문재인 대통령

어린이들을 만난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가 열린 청와대 녹지원을 지칭하며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며 “그런데 (행사에 참석한)우리 어린이들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어린이날을 보내는 마지막 어린이가 됐다. 특별한 추억을 잘 간직하라”고 말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청와대를 개방하기로 한 윤석열 당선인의 결정을 의식한 말이다. (중략) 문 대통령은 1시간 가량 이어진 행사를 마친 뒤 마무리 발언에서 “청와대에서 대통령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노니까 더 재미있었죠”라며 “이 좋은 추억을 잘 간직하면서 건강하게 자라고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략)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를 끝으로 사실상 임기 5년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주말을 제외한 근무일이 이틀(6일ㆍ9일) 남았지만, 대통령 집무실 이전 절차 등을 고려해 4일을 기해 청와대 내부 전산망이 끊겼다. (중략) 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날인 9일 오후 6시 근무를 마치고 김정숙 여사와 걸어서 청와대 정문을 나올 계획이다. 이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서울 시내 모처에서 임기 마지막날 밤을 보낸다. 10일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 윤석열 당선인의 취임식에 참석한 뒤 낮 12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경남 양산 하북면에 새로 지은 사저로 향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사저 입주에 앞서선 평산마을 마을회관에 들러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하며 임기를 마친 소회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어린이날 기사인데 주인공인 어린이의 말은 한 줄도 없는게 아쉽다. 전술했듯이 이렇듯 어린이들을 객체나 주변인들로 여기는게 기자들에게도 그러하다. 오늘 기사는 어린이들의 밝은 표정들, 떠드는 소리들(의성어), 주인공들이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실어주는 기사였으면 아쉬움이 있다.

인터넷 매체 더팩트는 아이유에 대해 기사를 실었다.
기사 제목 : 어린이날 맞아 선행, 두 달 만에 또 1억 기부 / 지난 3월 산불 피해자들 임시조립주택 지원 위해 1억 원 전달
<가수 겸 배우 아이유가 올해로 100주년인 어린이날을 맞아 또 따뜻한 나눔을 실천했다. 5일 소속사 EDA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아이유는 어린이날을 기념해 한부모·조손가정 아동 및 청소년들에게 1억 원을 전달했다. 아이유는 "많은 분들께 받은 사랑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도움이 필요한 곳에 마음을 전하게 됐다. 모든 아이들이 더욱 환하게 웃으며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어린이날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기부금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 한부모, 조손가정 아동·청소년의 생활안정자금과 대학 입학을 앞둔 이들의 학비 지원으로 사용된다. 돌봄이 필요한 아동을 위해 주거 환경 및 생활용품 지원 등에도 쓰일 것으로 알려졌다.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략)>

더팩트의 기사 역시 어린이날이지만 주인공들인 어린이들은 없다. 아이유의 미담만 있다. 선행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다. 나랏돈을 노골적으로 대놓고 빼먹고 횡령하는 공직자들이 널려 있는데 가수, 먹방러들이 더 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날의 주인공은 어린이들이다. 이들이 하고 싶은 말, 꿈은 한 줄도 실을 만큼의 여유도 인식도 부재하다.

3. 어린이날의 교훈적 의미
소파 방정환이나 시인 바이런은 어린이를 대할 때 분명 보다 성숙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이들은 공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는 가치를 직접 실천하며 살았다. 과연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일까. 사람들은 먼저 태어났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생'(先生)님'이라 불리기를 좋아한다. 문자적으로도 별 의미가 없는 생물학적 의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좋다고 난리다. 어린이는 '어린 아이'라는 말을 줄인 것을 보아도, 이것은 일종의 무시나 언어 폭력은 아닐까. 어린이는 개별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미숙하기만 한 후생(後生)인에 불과할까.

이런 이치는 생각해 보았는가! '어린이는 세상 옳고 그름의 기준'라고 말이다. 검사들이나 판사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옳고 그름의 중심이고 판단자라고 거만하게 자랑할 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들은 법조문 암송자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추태를 부리기도 하는 일반 시민에 불과하다.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다. 세상의 중심이고, 진리의 기준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나라는 온 거리마다 모텔이 득실댄다. 국가적 수치이다. 혼인관계도 아닌 젊은 남녀, 혼인 후 가정이 있는 각 기혼자 남녀가 은밀하게 만나서 들락거리는, 자랑스럽지 않은 시설이고 사회적 현상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게 옳은가 나쁜가. 법 기술자들은 교묘하게 무혐의, 무죄 등으로 빠져나가겠지만, 세상의 이치, 하늘의 감시에서 결국 벗어나는 건 아니다.
이 문제를 즉, 몰래 두 남녀가 만나서, 출입 자체가 비밀스럽게 길게 내려친 천막 아래로 승용차가 기어들어가고, 몰래 기어나와 사라지는 이런 추한 만남을 어린이 앞에서, 자녀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가? 없을 것이다. 즉, 그런 짓은 법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서, 나쁜 짓임을 어린이가 심판하고 있다.

남을 속여서 거짓말하고 큰 돈을 버는 법 기술자들이 너무 많다. 옳은가 나쁜가. 무죄받으면 그는 선한 자인가? 어린이를 떠올리면 된다. 어린이를 데리고 그런 짓을 하겠는가? 자녀를 데리고 말이다. "너도 이 아버지처럼 이렇게 서류 조작하고, 거짓말해서라도 돈 많이 벌면 된다. 알았지?"라고 할 인간이 어디 있을까.

법 조문을 잘 안다고, 이리저리 교묘하게 문구를 넣고 빼서 어떤 사람을 억울하게 유죄 선고를 받고 형을 살게 했다고 하면, 이 인간은 선한 자인가, 악한 자인가. 이것을 판사들에게 물으면 바른 이치나 답이 나올까? 천만이다. 믿을 수 없다. 저들 또한 범법자들이다. 그러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어린이이다. 즉, 지은 죄가 없는 무혐의인 사람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는 과정을 어린이를 동행해서 그 짓을 조작할 수 있는가? 자신의 자녀를 데리고 말이다. 못한다. 즉, 그짓은 악한 짓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어린이다. 즉, 그릇되게 전제된 지식으로 채워진 세뇌된 어린이가 아니라, 천진하게 골목에서 뛰어노는 일반적인 어린이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어린이에 대해 가장 무거운 가치를 부여하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의 뜻은, 기독인의 신앙은 어린아이의 속성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린아이의 속성이 무슨 뜻인지는 가까운 예배당의 목사에게 문의해 보기 바란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기부 많이 했다고, 굵직굵직한 이벤트 많이 했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구원받는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매일이 어린이날로 여기고, 어린이와 이야기하고, 함께 웃고, 힘들 때 도와주는 어른으로 살아야겠다. 그래서 어린이와 어른이 하나로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 건강한 사회이다. 범죄도 줄어드는 결실을 맺게 된다. 검사들과 판사들로 인해 어지러워진 우리 나라가 왜 이렇게 무지막지해졌는가? 상식도 통하지 않고 못된 억측이 힘을 얻는 나라가 되었는가! 어린이의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돈 있고, 힘 있고, 법 권력 있고, 공직 자리에 있으면, 인생의 성공을 넘어서서 사회 가치의 중심인 줄 착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나 발언들은 술주정뱅이의 지껄임들이나 다름 아니다.


어린이 정신을 되찾는 일이 5월 5일 어린이날에 곱씹어봐야 하는 큰 숙제이다. 오늘 남은 시간, 어린이들을 섬겨라. 그게 어른들이 해야 하는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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